연재ㅣ김경림의 ‘씩씩하게 뻔뻔하게’ “거짓말을 하면 따끔하게 혼내야죠. 그래야 다시는 안 할 거 아니에요.” 아이는 학교 숙제로 수학문제집을 풀다가 모르는 문제가 나와 책 뒤편의 정답지를 슬쩍 보고 적었다. 그리고 자기 전 엄마와 하루 일과를 이야기하다 얼떨결에 그만 ‘자백’을 하고 말았다. 엄마는 그 즉시 아이에게 손을 들고 있으라는 벌을 주었다. 문제집이란 답을 보지 말고 푸는 게 원칙인데 정답지를 보고도 자기가 풀었다고 말한 것은 거짓말이라며, 다시는 그러지 말라고 단단히 일렀다. 거짓말하는 습관이 생기면 큰일 나기 때문에 ‘초장’에 잘 잡아야 한다고 했다. 올해 처음 학교에 간 초등 1학년의 이야기다. 세 살 버릇은 진짜 여든까지 가고, 바늘 도둑은 소도둑이 되고야 마는 걸까? 부모교육 프로그램에서나, 대학 강의에서나 “유전과 환경 중 무엇이 더 사람에게 큰 영향을 미칠까요?”를 물으면 80%가 넘는 사람들이 ‘환경’이라고 답한다. 우리는 아무리 힘든 상황이더라도 노력을 통해 극복할 수 있다고 굳게 믿는다. 심지어 타고난 기질마저 환경이 바뀌면 변화하고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은 타고나는 것인가, 만들어지는 것인가?’라는 이 오래된 질문에 심리학을 비롯한 과학은 이미 답을 가지고 있다. 환경을 아무리 바꾸어도, 아무리 열심히 ‘교육’해도 타고난 기질과 그에 따른 발달 경로를 완전히 바꿀 수는 없다. 열심히 김매기를 하고 거름을 잘 주면 탐스러운 귤을 얻을 수는 있지만, 레몬이나 자몽이 열리지는 않는 이치와 같다. 그런데 가끔 우리는 내가 키우는 게 귤인 줄 모르면서 자몽이 열리지 않았다고 한탄하고, 환경의 영향을 그렇게 믿으면서도 정작 아이의 실수 한 번을 소도둑이 되고야 말 결정적인 증거로 채택하곤 한다. 작은아이는 한글을 다 떼지 못하고 초등학교에 들어갔다. 혹시 한글을 몰라 위축되지는 않을까 싶어 아이가 익숙한 단어 몇 개를 더듬더듬 읽을 때 의도적이고 과장된 칭찬을 했다.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고 싶어서였다. “와, 너 글자 많이 아는구나!” 아이는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라는 표정으로 답했다. “엄마, 나 글자 몰라.” “아냐. 너 방금 읽었잖아. 그렇게 계속 읽으면 돼.” “근데 엄마, 나 지금은 못 읽어.” 열등감과 수치심, 아쉬움과 열망 따위의 군더더기 감정 하나 없이 담백한 표정과 어조로 ‘나는 지금 모른다’는 이 문장을 아이가 말했을 때 나는 어떤 종류의 근본적인 충격을 받았다. 나의 ‘모른다’는 대개 감추고 싶은 부끄러움이거나 책임을 피하기 위한 꼼수였다. 그러나 아이는 ‘나는 홍길동이다’라고 말하듯 ‘모른다’고 말했다. 모른다는 것을 아는 순간 지혜는 길을 내어준다. 종국의 깨달음은 “오직 모를 뿐!”이라던데, 우리는 무엇을 그리 ‘안다’고 여기며 가르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을까. 어쩌면 아이들은 ‘나는 지금 모른다’는 지혜의 전부를 알고 있는 게 아닐까. 김경림 나는 뻔뻔한 엄마가 되기로 했다> 저자
김경림 나는 뻔뻔한 엄마가 되기로 했다> 저자
July 27, 2020 at 04:09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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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모른다'를 이해하는 한 방법 -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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