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s

Wednesday, July 8, 2020

“사적 응징밖엔 방법이 없다”… 디지털교도소 만든 국가의 무능 - 경향신문

oleholah.blogspot.com
2020.07.08 17:34 입력 2020.07.08 19:58 수정
글자 크기 변경

성범죄자, 아동학대, 살인 등 강력 범죄자의 신상을 공개하는 ‘디지털 교도소’가 대중적 호응을 얻고 있다. 디지털 교도소의 출현에는 현행 사법 시스템하에서는 성범죄자에 대한 ‘정의로운’ 처벌이 불가능하다는 불신과 무기력이 깔려 있다.

n번방에 분노한 사람들’이 8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웰컴 투 비디오’ 운영자 손모씨의 미국 송환 불허를 결정한 사법부를 규탄했다. 한 참여자가 ‘사법정의는 죽었다’는 내용을 담은 피켓을 들고 서있다./ 오경민 기자

n번방에 분노한 사람들’이 8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웰컴 투 비디오’ 운영자 손모씨의 미국 송환 불허를 결정한 사법부를 규탄했다. 한 참여자가 ‘사법정의는 죽었다’는 내용을 담은 피켓을 들고 서있다./ 오경민 기자

취업준비생 황다예씨(27)는 디지털 교도소가 등장한 것 자체가 성범죄를 가볍게 여기는 사회적 인식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했다. “법적인 문제가 없다고 말할 수 없겠지만 여성으로서는 응원하고 싶어요. 사이트에 올라온 범죄자들도 여성들의 성을 아무렇게나 사고팔며 인권을 침해했으니 응징 차원에서 정의롭다는 생각도 들고요. 디지털 성범죄 때문에 극단적 선택을 한 여성들도 많잖아요.”

디지털 교도소는 지난 6월 만들어졌다. 운영자가 제보를 받아 범죄자의 신상을 공개한다. 8일 기준 디지털 교도소에 ‘갇힌’ 이들은 약 100여명이다. 범죄 유형별로는 성범죄가 가장 많고, 살인과 아동학대가 그 뒤를 이었다. 텔레그램 성착취 영상 구매자부터 세계 최대 아동 성착취사이트 ‘웰컴 투 비디오(W2V)’ 운영자 손모씨, 그의 미국 인도를 불허한 판사들의 얼굴과 이름이 공개돼 있다. 휴대전화번호와 직장명이 노출된 이들도 있다.

특정인의 신상을 공개하고, 댓글로 이들에 대한 비난을 유도하는 것은 형사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여성위원회 소속 신하나 변호사는 “범죄를 저지른 것이 사실이라 해도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이 성립할 수 있고, 이미 형사처벌을 받은 범죄자들의 이중처벌 문제도 대두될 수 있다”고 했다.

지난 1월엔 양육비를 주지 않는 부모의 신상을 공개해 명예훼손으로 기소된 웹사이트 ‘배드파더스’ 운영자가 1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았다. 양육비를 받아내려는 목적이 분명했던 배드파더스와 달리, 성범죄자 비난을 유도하는 디지털 교도소는 위법성 조각 사유인 공익성이 인정될 가능성도 높지 않다.

디지털교도소 홈페이지 갈무리

디지털교도소 홈페이지 갈무리

디지털 교도소 역시 신상정보 공개가 불법이라는 점을 인지하고 있다. 하지만 사법부의 솜방망이 처벌이 계속되는 한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디지털 교도소장 박모씨는 지난 7일 JTBC 인터뷰에서 “(스스로를) ‘사실적시 연쇄 명예훼손범’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며 “사촌 동생이 (n번방) 피해자라는 걸 알고서 눈이 뒤집혔다. 광역 해킹해서 판매자와 구매자를 잡기 시작한 게 여기까지 오게 됐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국가가 근본적인 문제 해결에 나서지 않는 한 악순환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변호사는 “디지털 교도소가 등장한 배경에는 사법 시스템에 대한 실망이 있다. 솜방망이 처벌이 반복되면서 ‘자경단’이라도 만들어야 하지 않나 하는 여론이 일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만에 하나 누군가가 원한을 품고 허위 제보를 해 피해자가 생기면 구제할 방법이 없다”고 했다.

최근 손씨의 범죄인 인도 불허 결정 이후, 디지털 교도소에 대한 관심이 커진 것도 이런 분석을 뒷받침한다. 손씨는 세계 최대 아동성착취 사이트를 운영하고도 징역 1년6개월만 선고받아 이미 형 집행을 마친 상태였다. 미국으로의 범죄인 인도는 손씨가 엄벌을 받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로 여겨졌으나, 법원은 ‘한국에서도 추가 수사가 가능하다’는 이유로 이를 불허했다. 손씨에게 남은 혐의(범죄수익은닉죄)에 대한 법정 최고형은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불과하다.

이날 전국 곳곳에서는 사법부의 범죄인 인도 불허 결정을 규탄하는 시위도 이어졌다. ‘n번방에 분노한 사람들’ 등 시민 150명은 이날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 정문 앞에서 ‘사법 정의가 죽었다’는 뜻에서 조화를 던지는 퍼포먼스를 했다. 디지털성착취 부산공동대책위원회도 부산지방법원 앞에서 손씨의 미국 송환을 불허한 사법부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손씨미국송환_릴레이1인시위’ 태그를 공유하며 1인 시위에 나선 사진을 인증하고 있다. 누리꾼들은 인천 부평역, 광주고등법원, 수원지방법원 등 각자의 위치에서 ‘손씨는 미국으로, 판사에겐 죗값을’ ‘#사법부도_공범이다’ 등 문구를 담은 팻말을 들고 1인 시위에 나선 모습을 올렸다.

Let's block ads! (Why?)




July 08, 2020 at 03:34PM
https://ift.tt/3gQa5vt

“사적 응징밖엔 방법이 없다”… 디지털교도소 만든 국가의 무능 - 경향신문

https://ift.tt/2XUVJ6o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