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서·수첩에 '별건 감찰' 의심 내용 수두룩…"불면·환각" 토로
(춘천=연합뉴스) 박영서 기자 = 음주운전 사고를 내 직위해제 된 상태에서 극단적인 선택으로 사경을 헤매다 숨진 강원도 내 한 40대 경찰관은 경찰청 감찰부서에서 직접 나선 감찰에 상당한 압박감을 느낀 것으로 드러났다.
2018년 경찰개혁위원회의 감찰 활동 개혁방안 권고로 '별건 감찰'을 금지하기로 했음에도 숨진 경찰관 A씨가 남긴 또 다른 유서에는 별건 감찰로 의심되는 내용이 고스란히 적혀 있었다.
연합뉴스가 8일 유족 측을 통해 입수한 A씨가 친동생 앞으로 남긴 유서를 보면 A씨는 '음주운전 혐의와 공금유용 혐의로 감찰 조사를 받아야 할 것 같다'고 썼다.
특히 공금유용과 관련해서 '월 15만원'이라는 금액과 직위해제 전 소속부서에서 근무했던 기간인 '19.2∼20.6'을 구체적으로 적었다.
A씨는 이로 인해 '아마도 공무원 신분을 잃고, 검찰 수사는 검찰 수사대로 받아야 할 것 같다'며 '이후 징역형을 살 것이고…'라고 말끝을 흐렸다.
A씨는 '도저히 더는 살아나갈 방법이 보이지 않아 고민에 고민 중이다'라고 털어놨다.
아내에게 남긴 유서 내용과 마찬가지로 자신이 음주사고를 냈던 6월 1일 이후 숱한 불면과 환각 증세를 겪었고, 어느 것이 현실인지 어느 것이 실제인지 모를 정도였다고 했다.
A씨는 평소 동생에게 하지 못했던 말을 덧붙이며 미안하다고 썼다.
유족은 이를 토대로 A씨가 '과도한 감찰'의 압박에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강하게 의심하고 있다.
특히 음주운전 사고 이후 직위해제 됐으나 피해자와 합의를 보고 처벌을 감수하기로 한 만큼 음주사고만으로는 극단적인 선택을 할 이유가 없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A씨의 수첩을 보면 6월 중순 인사혁신처의 소청 심사 사례를 분석했다는 내용을 남긴 것으로 보아 직위해제에 이의를 제기하는 방안도 고민한 것으로 보이며, '생존 우선'이라는 문구도 눈에 띈다.
수첩 중간중간에는 소화불량이나 불면도 적혀 있었고, 불면 옆 괄호 안에 '감찰 조사'도 쓰여 있었다.
A씨의 유서 등에서 별건 감찰로 보이는 정황이 발견되면서 음주사고 예방 차원의 감찰로만 알았던 동료들은 당황스러워하고 있다.
전국경찰직장협의회발전위원회(직발위) 관계자는 "음주사고 후 동료들에게 미안한 마음도 크고 심리상태가 불안한데 감찰에서 음주운전과는 관계없는 업무비를 지적하니 심리적 압박이 심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A씨는 지난달 1일 오후 8시 15분께 속초시 교동에서 음주운전을 하다가 신호대기 중인 차량을 들이받는 사고를 낸 뒤 이튿날 직위해제 됐다.
같은 달 26일 낮 자신의 집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해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치료 중 숨졌다.
이후 경찰청은 A씨의 죽음을 둘러싼 의문 해소를 위해 경찰청 인권보호담당관 5명과 직발위 소속 3명으로 이뤄진 특별조사팀을 꾸리고 인권침해 행위가 있었는지 등을 조사하고 있다.
conanys@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2020/07/08 16:48 송고
July 08, 2020 at 02:48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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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갈 방법 없어"…감찰 압박 못 이기고 극단선택한 경찰관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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